감상 전시

박노해 사진전 - 또 다른 시를 보는

무거운 빈가방 2014. 3. 6. 01:22

이사한지 1년 만에 서울에 올라오신 나의 부인님

 

박노해 사진전을 꼭 봐야한데서 세종문화회관엘 갔다.

 

시인에서 사진작가로 변신한 그의 작품은 안개 자욱한 세상에 언듯언듯 조금씩 보여주는 진짜 세상의 모습처럼 보인다.

 

사진 하나하나에 달려있는 설명들이 모도 다 한편의 '시'들이다.

 

이 친절한 시는 어떤 이들에겐 감동이 되고 나에겐 힘듬이 되기도 한다.

 

늘 부족한 나는 사진만 걸려 있으면 설명이 너무 없다 투덜거리고

 

많이 있으면 사진 자체의 감상을 방해한다 투덜된다.  용학형 말처럼 난 투덜이다. 스머프 마을의 그 투덜이....

 

처음 가볍게 사진을 보기 시작했으나

 

시인이 달아 놓은 시들을 보면서 난 조금씩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물을 그림씩으로 이해해 버리다 보니 글을 잘 보지 않는 나에겐

 

사진 마다 달린 설명들은 하나하나 읽어야 하는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읽지 않으면 될듯도 한데 있으면 뭔가의 호기심으로 보지 않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사진은 진실을 알려주는 힘이기도 하지만 때론 허구이기도 하다.

 

국제 영화제 때 본 뱅뱅클럽에 대한 글

 

어떤 이는 재수가 좋아 찍은 사진이라고 그렉의 상을 비난하자 켄은 그에게 '니도 목숨걸고 현장에 나가면 그런 재수 좋은 사진 한장쯤 건질 수 있을꺼다'라 말한다. 사진은 순간을 담아내지만 그 과정에서의 기다림이란 끈기와 그 현장에 대한 소신과 때론 목숨과 맞바꿀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을 여기선 몸으로 보여준다.

기자의 활약엔 이것만 있을까? 친구가 다쳣을 때 특종과 친구 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 하루 아니 1시간도 배려하지 않고 갑작스런 취재 건이 생겨 뛰쳐나간다면 이건 직업적인 것인가? 아님 몸에 베어 버린 특종에 대한 다급함인가?

마약으로 직장을 잃은 카터는 수단으로 가서 촬영을 한다. 여기서 찍은 한장의 사진 '굶주린 아이와 아이가 쓰러지길 기다리는 아이 뒤에 있는 독수리'의 사진. 이 사진이 퓰리처 상을 받게 한다.

그런데 카터는 사진을 찍고 난 뒤 독수리를 쫓아보내엇을까? 아이에게 먹을 것이라도 주었을까? 많은 질문들이 쏟아지고 카터는 직접적 답을 피한다.

직업과 도덕의 문제 그 외에 인간의 문제를 영화는 계속 다룬다

 

박노해 사진전에선 도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그렇지만 사진은 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진실이란 하나의 모습을 다른 도구를 통해 다른 모습으로 담겨진 변형된 모습이다.

 

시인이 사진 하나하나에 적어 둔 설설적 시도 시인의 느낌을 뭔가 모르게 강요하는 듯 다가온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자연만이 나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세상에 있기 대문이다.

 

그들에겐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들은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본 아내에게 말을 아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내 말 자체가 아내의 감상을 강요하고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아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 무었을 보고 싶으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도 즐거운 관람이 되었고 여러 세상을 보았기에 좋았다.

 

사진전을 보다가 친구 재봉 도사에게 보낸 메세지

 

박노해사진전
무엇에든 정착치 못하고 (사상. 행동 등 많은 것이 포함) 그냥 떠도는 영혼 같은것이 나라고 정의해 보고픈데....
사진을 보면서 맘이 찹찹하다.
작가가 살아온 길이 존경스럽고 부럽지만 저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노! 하는 시샘

사진 하나하나에 시를 써놓으니
사진 보기도 버겨운데 글 까지 읽으려니 더 힘들다.
시라기 보다는 사진에 대한 설명인데 없어도. 잘이해 못하니 궁시렁거리는데 있으니 이해에 오히려 방해된다 궁시렁거린다.
작가는 자신의 몫을 다한듯 한데
돈내고 구경하는 나의 몫은 이것으로 다한것인가?
마음까지도 팔 수 있는 세상에 나름 영혼을 옮겨왔다 자부하는 작가의 큼에 모든 것이 쫄아드는 느낌이다.
노순택 사진을 그만 보겠다 한 것은 사진 하나에 사족이 넘 많아서 인데
박노해의 사진은 적절히 토를 단다.
그렇지만 너무 피곤타. 대충 읽고 뱅뱅거리는 느낌으로 지나친다.

 

여기에 대한 답변

 

'어찌 할수 없음'은 받아드리고
'어찌 할수 있음'에
최선을 다하라.. 안합디꺼^^

 

너무도 멋진 말이다 싶었는데

이 말이 사진전 입구에 적혀 있는 시인의 글이다.

전시회에 온 나 보다 안오본 그가 훨씬 낫다.

 

 

그런 것 같다. 작가가 찍은 사진 하나하나는 기다림과 끈기의 미덕을 표현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바라보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것들로 가득이다.

 

그가 세상을 살면서 잘못된 구조에 항거하면서, 감옥에서 외로이 고통에 처했지만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마와 구도의 길로 바꾸엇음을 보여 준 것이 이 사진들이다.

 

나의 궁시렁은 내 개인적 문제이고

 

그의 작품들은 그 스스로가 열망하는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잠시도 놓지 않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

 

그러기에 그는 뭘해도 학자의 탐구심 처럼 파고들고 시인의 마음으로 낭만적이고 사회운동가의 몸으로 분노와 희망을 아로새긴다.

자격이 있다  세상을 뜻뜻이 살아갈 진정한 시민권이 있다.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 뜸금 없는 듯한 이야기 그러나 사실인..

아~ 효리는 우찌이리 이쁘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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