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부산국제영화제

<이름들로 만든 노래>:시작은 평온과 휴식을, 중반엔 넘치는 감동을, 결론은 이중성과 뻔뻔함을

무거운 빈가방 2019. 10. 9. 00:53

<이름들로 만든 노래 The Song of Names>

 

드라마캐나다, 영국, 독일, 헝가리 113

(감독) 프랑수아 지라르

(주연) 팀 로스, 클라이브 오웬 누적관객(자료없음)

 

<이름들로 만든 노래>는 반세기 간 두 대륙에 걸쳐 펼쳐지는 우정과 배신, 화해를 담은 감동스토리다. 이 작품은 수십 년 전, 주인공이 첫 공연을 하던 날 밤 홀연히 사라진 어린 시절 친구를 찾아 나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감동적인 장면, 독일의 폭격에 지하 방공호로 피한 사람들, 도비틀은 여기에서 연주한다.

                  그러나 이 연주는 라이벌에 대한 자만이 깔려 있고 , 이 자만심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도비틀 뒤 왼편 두번째 남자가 그를 후원하고 가르치고 성숙하게하면서 기다려준 마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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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바이얼린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

 

바르샤바의 아버지는 천재 연주자인 어린 아들 도비틀을 런던 후원자에게 맡긴다. 후원자는 자기 아들 마틴과 같은 방을 쓰게 한다. 넉넉하진 않지만 천재성에 깊이 공감하고 그의 성장을 도운다. 아이들은 티격태격 싸우면서 음악적 영감과 형제애를 나누며 함께 성장한다. 가족 전부가 천재의 성공에 모든 것을 건다.

 

천재 연주자의 첫 공연. 드디어 갈고 닦은 실력을 세계(2차 대전 시 영국이니)에 내어 놓는다.

 

그런데 낮 리허설을 잘마쳤던 천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한아이가 어른(마틴역: 팀로스) 이 되어, 나타나지 않았던 아이(도비틀역 : 클라이브 오웬)를 미움과 그리움으로 찾으러 다니고 회상하고 하는 영화가 <이름들로 만든 노래 The Song of Names>(감독 : 프랑수아 지라르 , 2019 제작)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감동과 긴장감을 준다. 한 장면이라도 놓치기 싫어 눈을 깜빡거리는 것도 허용 안될 정도이다.

 

연주를 하는 그날 밤 , 연주자 도비틀은 인생의 가장 큰 변환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 변환이 제목인 이름들로 만든 노래때문이며 이 노래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 노래를 만들어 기억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노래이다.

 

이름들로 길게 이어지는 감동적인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찢어졌다.

 

이 장면에서는 한국사람이라면 우리의 이름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면에서 뚫고 나오는 노래가 들리는 동안 우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다. 울면서 가슴치면서.

 

일본 침략자들의 식민지에서 죽어간 사람들..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쓰러진 사람들.. 강제 징용으로 일본 비행장을 만들다가 심한 노역으로 죽거나 패전 때 패잔병들이 폭파한 작업장에 생매장 당한 사람들

 

3..1 운동으로 재가 되어버린 사람들.. 고문으로 죽은 사람들..

상해 독립운동하다 밀정에 의해 암살당한 사람들..

만주 초토화 작전에 불타고 찔리고 죽은 독립운동가와 전혀 무관한 일반 백성들..

 

어린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를 하다가 죽은 여성들, 겨우 살아남았으나 모욕 받으며 죽고 이제 몇 안남은 할머니들..일본 국내에 문제 있을 때 마다 정부의 외면 속에 일본 군중에 의해 희생된 관동대학살.. 해방 후 즐거운 마음으로 귀국선에 올라탔다가 일본 놈들의 폭침으로 수장된 사람들....

 

생체 실험에 의해 병들어 고통으로 죽은 사람들.. 아 이 중에 윤동주도 있었지...

해방 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독립운동 자손이란 이름으로 매국세력들에 어이없이 죽임을 당한 사람들 4.3의 희생자들, 보도연맹 사건으로 손이 묶여 생매장 당하거나 바다에 수장된 사람들, 전쟁으로 희생된 군인들과 무참히 학살당한 민간인들, 세계가 민주화를 즐길 때 자기나라 군인들이 국민을 총칼로, 헬기로 죽인 5.18 광주의 희생자들, 백주대낮에 가라앉는 배 속에 수백 명의 학생들, 그들을 구하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둔 정부 아래에서 공부한 세월호 희생자들

 

그들만큼의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죽었으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는 현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분열을 일삼는다고 비난 받는 이상한 현실, 비난자들은 이 죽음들의 가해자이거나 협조를 한 사람들로 권력을 잡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현재 때문에

 

이 땅이나 이 땅 밖에서 희생된 이름들을 잘모르고, 부르지도 못하는 분노와 설움으로 눈물을 쏟을 수 있겠다.

 

이렇게 감동을 주던 영화의 끝은 매우 충격적이다.

 

가족의 죽음에 매몰되어 자기를 지켜주고 키워준 현재의 가족을 외면해 버린 댓가를 마틴일가는 엄청나게 치른다. 그가 버린 것은 그에게 모든 정성을 다한 주변의 사람들도 해당이 된다. 그런데 친구는 여전히 천재의 음악과 자신만의 정당성을 가진 행동에 집착한다. 30년 지나 돌아와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자기 빚은 다 갚았다 한다. 그가 갚았다는 빚은 한순간 가슴에 그냥 남아 머물러 있는 감동뿐이다. 어떻게 모든 것을 다 받쳐 길러주고 키워 준 것에 대한 갚음이 될 수 있으랴!(엔딩엔 도비틀이 마틴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먹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더 더 씁쓸하다)

 

자기들 희생을 빌미로 몇 천년을 살아오던 사람을 쫓고 압박하고 죽이고 하는 나라의 당당함이 개개인 또한 이런 자신만의 선민에 물들어버린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직 자신들만 아픔을 겪은 듯한 이중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시작은 평온과 휴식을, 중반엔 넘치는 감동을 그러나 결론은 이중성과 뻔뻔함을 드러내고 느끼게 한 매우 오묘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