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가신 날 49일째
10월 22일(화) 저녁에 갑자기 눈을 감은 울어머니 막제를 아침에 지냈다. 동생부부가 오고 강선생은 사진 찍어주러 출근 전에 잠시 들렸다.
마눌님은 날마다 할매(평소에 울어머니를 할매라 불렀다) 방에서 기도를 올렸고 나는 제에 해당되는 월요일만 같이 기도를 올렸다. 오늘은 마지막이라 동생부부가 음식 등 몇가지를 해서 가져오고 상에 올렸다.
제의 경은 한글본을 찾아서 필요에 의해 편집한 것을 카피하여 읽었다.
한복 한벌- 이건 아마 여동생 결혼햇을 때 입엇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그리고 구겨 신던 신, 대로가 선물한 지팡이, 한번씩 차던 시계를 기억 품으로 두고, 평소 모습 사진들을 담은 사진들을 스크린에 띄웠다. 이 스크린은 초상날 영정 사진 아래 두고 띄웠는데 ,이게 가족들에겐 추억을 일으켜 주니 다들 좋아했다.
옛날 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100일 동안 상석을 어머니께서 올리셨다.
큰어머니 돌아가셨을 땐 우리부부가 집에서 49재를 지냈고, 환속한 수성이가 막재날 경전과 목탁까지 쳐주며 마무리를 지었다. 당시(1987,1월) 에는 집에서 초상을 치루던 때라 이런 행사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 때는 친인척들이 참여했고, 우리 형제는 아직 상제에 대해서는 별로 몰라서 시키는대로 했다. 난 그 때도 누가 이래라 저래라는 것이 별로 듣기가 좋지 않았다. 큰어머니 돌아가셨을 땐 상은 시키는대로 했지만 마무리는 내가 알아서 했다.
이제 돌아가신 분은 내 어머니이니 진짜로 내 마음대로 했다. 범어사 쪽에 뼛가루를 뿌리려한 것은 마눌님 반대 때문에 아버지 산소 옆에 묻었다. 정확히는 큰어머니 옆인데 작은 누나는 ‘죽어서도 후실인 형태가 아니냐!’ 하면서 통곡을 했다. 큰어머니는 봉분이 있는데 할매는 화장하여 땅에 묻고 돌하나로 위치만 표시했기에 더 그리 느꼇을 것이다.
원래 할매는 산소에 가지 않겟다 했다. 그냥 뿌려 달라 했다. 이건 어머니 유언임에도 설사 그리 말씀하셨다 해도 다들 내가 유도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나도 내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산소를 가니 아~ 그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할매가 묻힐 자리가 없는 거다. 아버지께서 미리 장소를 둘 때도 할매 자리는 없었다. 그걸 할매는 아셨던 거다.
사후에 대해서는 별 따지지 않는 나지만 할매 생각하면 좀 우울하다. 원하는 대로 뿌려 드리지 못해 매우 미안하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담배를 걸쳐놓은 돌하나가 뼈가루 묻은 표시이다.
마치 일본에서 조선인 무덤 같다. 그러나 새끼들이 돌아가면서 조그만 야삽으로 정성스레 땅을 파 묻은 것이기에 왕릉 못지않다.
재의 내용에 주소를 읽는 대목이 있다.
1.거불 (불보살을 청하여 모심) 법주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절) 나무 관음세지 양대보살(절)
나무 접인망령 인로왕보살 마하살(절)
2. 청혼 (영가를 모심) (법주)
사바세계 한국 부산시 금정구 금강로 XX3, XXX동 XXX호에 살았던 우리 어머니 김말란 영가시여 당신이 자고 쉬고 하였던 방에서, 당신의 아이들이 모여 살아오심에 대해 추모하고 모든 걱정 놓아버리고 편히 가시라 기원합니다. 어머니 뿐 아니라 이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큰어머니, 000의 아버지 어머니(장인, 장모님이시다), 000의 아버지, 어머니(여동생의 시부모님이시다) 그리고 모든 조상들도 자리에 함께 할 것입니다.
현생에 마지막 자리이니 부처님의 법어를 들으시면서 기쁜 마음으로 마무리하소서.
이리 고치고 참석한 사람들의 부모님(모두 돌아가셨다)도 함께 불렀다.
프린터 끝엔 칠순 때와 구순 때의 사진과 할매 사진을 올렸다.
다 읽고 아침을 나누어 먹고 이제 마무리 짓는다.
농 위에 있던 큰어머니 사진도 꺼내어 방에 둔다.
식민지 때 태어나 수많은 굴곡진 삶을 살았던 어머니
대한제국 때 태어나 현대사의 모든 것을 함께한 아버지와 큰어머니
이제 그분들의 삶, 웃음, 슬픔, 아웅다웅 모든 것이 마무리 되고 훌훌 날아가버린다.
남은 것은 마음에 아로새겨진 것들과 몇장의 사진들.
이것도 내가 사라지면 울마눌님 돌아가시면 거의 다 사라진다.
아직 내새끼들이 있지만 그들도 죽으면 끝이리라.
그래도 울할매는 참 잘사셨다. 젊었을 대 고통은 나이가 들면서 없어지고 매우 편하게 지내셨다. 구순이 넘어도 큰병없이 지내셨고, 돌아가실 때도 큰고통 없이 숨을 거두셨으니 이것은 젊었을 때의 모든 것을 다 감했을거라 생각한다.
할매 우리 할매 모든 것 다 털어 버리고 이제 자연이 되었네요.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04-21 춘천 : 이치를 알면 세상에 신비로운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 무애스님 (0) | 2020.04.23 |
---|---|
축하 봉준호 (0) | 2020.02.11 |
가신날 다섯번째 - 19-11-25 (0) | 2019.11.25 |
19-11-18 어머니 가신 날 4번 째 제 그리고 면허정지 (0) | 2019.11.19 |
19-11-16 서면 집회 : 다시 나아가지 않으면 지옥을 맞볼 것이다. (0) | 2019.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