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제주도 첫날 - 한림지역 중심으로 : 아름다움으로 눈부시지만 피로 물든 아픔으로 새겨젔으니.

무거운 빈가방 2020. 1. 12. 21:35

제주도 첫날 : 한림지역 중심으로    


계획

숙이네보리빵 - 진아영할머니집터 월령선인장군락지 (15.1/23) 한경면두모연대(강흥식책기념비) 판포포구, 해오름전망대 - 독개물항뚝베기- 옹포리 명월포전적지 (앞뒤로 독개물항해물둑배기,한림칼국수보말매생이 ) - (숙소가는 길에) 한림지서 터에는 현재 한림파출소 - 고고애월게스트하우스-(: 봉화대 애월환해장성)

*** (변수) 제주 한림에 서린 4.3 아픔 만벵듸 가는길

*** 산위로 :김창렬미술관 저지오름 생각하는 정원 전쟁평화박물관 오설록티뮤지엄


실제: 

빌레못동굴 - 새별오름 나홀로 타는 나무 - 만벵듸 공동장지 - 명월대 팽나무 군락지 - 진아영할머니집터 월령선인장군락지 (15.1/23) 한경면두모연대(강흥식책기념비) 판포포구, 해오름전망대 - 독개물항뚝베기- 옹포리 명월포전적지 제주한수풀 해녀학교 - 한림파출소 - 고고애월게스트하우스 --(: 봉화대 애월환해장성)


                                                    < 자기만한 베낭 메고 간다, 구서여중 옆을 지난다.>


공항에 내려 잽사게 랜트카 공용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다급히 움직이다 보니 지도 챙기는 것 잊는다. 밤까지 계속 잊었다.

차를 빌리는데는 생각 보다 빨랐지만 네비 조작이 너무 어렵다. 대부분 폰에 의존한다.

공항에서 잠시 검색하다가 ...빌레못동굴이 만벵듸와 거리가 가깝다 그래서 추가하고 새별오름나혼자나무도 추가한다.

빌레못골 가까이서 굴을 찾으러 걷다가 큰 추모비가 나온다. 여기구나. 근데 쇠가림막이 세 개로 닫혀있다.

이상하다.

하나 열어 들어간다.

마눌님은 절해라한다. 사진 찍는다고. 느낌이 이상하여 목례만 한다. 뒤에 무덤들이 검고 반듯한 비석들로 가득이다.

다시 보니 가문 무덤이다.. 에이.. 아뭏든 팻말은 불친절하다 입구에 간단 표지하나면 끝인데 그게 왜 없을꼬? 사람들이 찾기를 바라지 않나? 아님 돌아간 분들을 찾는데 약간의 수고를 느끼라는건가?

 

빌레못 굴은 구석기 유물 발견으로 출입을 못한다. 입구 구멍이 작다. 그곳에 숨어 나오지도 못하고 불안에 떨다 죽은이의 고통.. .. 아이는 어떠했을까?

아이와 같이 죽는 부모의 심정은? 누가 먼저 죽으면서 남은 누가 통곡을 했을까?

우린 목례하고 안내판을 읽고 아픔을 느낀다.




    

< 빌레못 동굴. 좁아서 들어가기도 어렵겟다. 그런데 안은 엄청 넓단다.?


새별오름 혼자 서있는 나무를 찾아가는데 길에 차가 여러 대 . 사람들이 왕창 움직여서 여기가 나무라 확신하고 나간다.

매우 푸르고 느른 들이다. 약간의 고개를 오르듯 하는데 시원하다. 이시돌 목장인가?

목장 보다 더 푸르고 넓다.

사람 있는 쪽으로 가니 회사에서 무슨 퍼포먼스 준비를 한다. 혼자나무는 안보인다. 그런데 뚫린 풍광과 넓은 초원은 가슴을 다 뚫어준다.

같은 새별오름인 듯 하고 반대편으로 가면 나무가 있을 듯하다.

    

 

다시 차를 모니 반대편으로 한바퀴 돌아간다. 같은 터를 공유한 곳이다. 얼마나 넓었으면 처음 올라간 새별오름에서 나무 까지 거리가 엄청날까?

추운 바람에 홀로선 나무도 춥게 보인다. 5명 청년들이 사진 찍는데 한참이다. 개떨듯이 떤다.

10분 지나 자리비낀다.. 욕이 나온다.

그래도 청년들 노는 것은 즐겁고 재미있다. 각종 표정들.. 웃음. 그래서 화내면 안되제.. 후다닥 찍고 만벵듸로 간다. 도중에 저지(발음이 뉴저지 비슷하여 뉴욕을 지나는 듯 하다)로 가는 길도 만나고 명월 팽나무군락지와 명월초등도 만난다. 여기 유혹에 넘어가면 다음 계획은 없다. 가볍게 사진만 후다닥 찍고 만벵듸로.

   


만뱅듸 바로 맞은 편에 커다란 비석 하나.. 여긴 입구가 엄청 큰 하루방이 지킨다. 죽음의 서열과 계급은 이리 차이가 엄청나다. 작은 봉분 여럿이 있는 이 무덤들. 예비 검속으로 혹 반항할지 모른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죽인다. 서북청년단 그리고 경찰..

그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지옥의 악마들이다. 잔인이 잔인을 더해 피맛을 못본 흡혈귀 처럼 사람을 죽인다. 돌로 쳐죽이고 던져 죽이고 찔러 죽이고 묶어서 바다에 던져 죽인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제주는 죽음으로 꽃이 핀 망자의 억울함이다. 목례.

   

 

진아영할머니께로 간다.

조그만 스레트집, 방한칸 같은 두칸. 턱이 날라갔지만 살아남았으되 살지 못하는 사람. 무명천으로 입 주변을 가렸다하여 무명천 할머니라고도 한다.

좁은 방에 사탕과 꽃도 가득이다, 사진과 그림, 그리고 방명록의 글들... 할머니 삶은 죽지못한 것이었을지라도 나중은 모두들이 애틋하게 추모를 한다. 그래서 조금은 다행이다.

   





월령선인장마을엔 선인장 열매가 한창이다. 담에 돌에 뿌리박은 모습들.. 담을 타넘으면서 담마다 생명의 뿌리를 내린, 멕시코서 파도타고 온것으로 추정하는 이 선인장 붉은 열매들..할머니집 터는 이럼 황홀한 풍광 입구에 상처와 고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포구엔 쉴만한 ... 카페와 팬션이 있네. 참 이쁘다. <쉴만한물가>(제주시 한림읍 월령안길 30) 쉬고 싶지만 어두워지니 담에 여기서 차한잔과 일박해야겠다..

데크로 바다길을 만들엇고 선인장이 엄청 줄을 서 잇다. 모두다 작품같다. 좌우로 풍력 날개들이 엄청 돌고 있다. 어두워 지기 시작하니 저멀리서 부터 어렴풋 보이는데 괴물들이다. 저놈들 때문에 바람이 더 부는건가?

 




    

한경면 두모연대로 간다.

두모연대는 제법 높다 주변 풍광이 훤하다. 바람 불어 날려갈듯 하고 어둠이 감싸지만 머리 위엔 반달이 빛을 더한다. 설이 다되 가는구나.

옆에 병장 비석이 있는데 어두워 보이질 않는다. 담을 기약하고 옹포리 명월포전적지로 향한다. 암만 검색해도 안되다. 웅포리가 아니고 옹포리다. 그래도 검색 안된디. 또 폰으로 간다.

     


도중에 독개물항해물뚝배기 집에 들러 저녁먹는다. 옹포리의 다른 이름 독개.. 참 듣기 좋다.

해물뚝배기는 1.2만이다. 간이 잘맞춰진 맛.. 근디 내게는 별 특별하지 않다. 해물 맛은 내겐 그서 거다.


왼쪽으로 틀어나오다가 폰 보니 집 주차장에서 직진하듯 골목으로 들어가면 되는거다. 돌려 찾아간다.

매우 허전하다. 누운 비석 하나 달랑.. 설명도 조금.

유명한 격전지이고 지역의 지배자가 100년도 안되어 3번이나 바뀐 전투지역 표시치곤 참 허전타.. 그냥 사진만 찍고

이젠 게스트하우스로 고고다. 이름도 애월고고 게스트 하우스

  

  

 네비 안내히는 큰길로 안가고 바닷가 길로 돌다돌다보니 해녀학교라는 팻말이 있다. 입구에 해녀 조각도 있다. <제주한수풀 해녀학교>. 갓길이 이런 재미를 준다. 어둡지만 연혁 등을 읽는다. 바닷가 쪽으로 해녀학교 건물이 보인다.

젊은 해녀가 있기는 한건가?

학생들이 많기를 기대해 본다.

    


 한림 파출소에 들렸다.

여기는 4.3이 폭도에 의해 일어났고 그것 때문에 침탈 당하여 순경이 죽었다는 푯말이 있다.

모든 죽음은 다 아프다. 특히 동족끼리 서로 죽이려 한 것은 더 아프다. 그러나 4.3은 이미 경찰들에 의해 자행되엇고 서북청년단과 군대 까지 들어와 양민들을 엄청 학살한 사건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3.1절 행사에 말탄 순경이 아이를 밟고 지나가 죽임에 이러렀는데도 사과는커녕 항의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나! 이것을 항의 한다고 폭도로 몰면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니 자연 일부는 무장하여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이런 팻말은 결국 역사의 왜곡이다. 이 왜곡은 누가하겟노?


박근혜 때 만든 것이고 이 때 역사왜곡을 위해 일본을 따라하는 교과서를 만들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수모를 주는, 민족혼을 망가뜨린 협상도 하지 않았나!

하지 않아도 될 사드를 배치하여 중국과 대처케 하여 경제를 어렵게 꼬아버렷지 않나!

임금 몇푼 안주면서 고급 물건을 만들던 개성공단을 철폐시커 중소기업을 망하게 하지 않았나!

이 모든 짓거리들이 친일매국일본장교 저거 아버지 박정희의 혼을 가진 딸년이기에 가능하겠지. 4.3으로 당한 희생의 문제 보다, 그것을 감추고 양민을 학살한 사람을 두둔하는 표지석이 더 화가 난다. 제주도에 몇 개를 더 만들었을까? 물론 전국에 다른 형태의 왜곡을 수백개도 더 만들엇겠지.

   


게스트하우스. 짐 내리는 동안 마눌님 먼저 올라가 방을 확보하라 한다. 한참 뒤 짐챙겨 가니 마눌님은 입구에 그대로 있다. 이름이 없단다. 마눌님 이름으로 예약한 것을 잊었다. 쥔장도 혹시나 싶어 방마다 뒤졌단다.

아뭏든 방.. 제법 크고 부억도 넓다.

부부가 온다하여 배려하였단다. 최소 7만원은 해야 할 방이다. 독채나 한가지이니.. 밥도 해먹기 쉽고 회장실도 따로다.. 복권당첨이지만 둘이라서 싱겁다. 강도사 부부 오라하고 싶다.

인터넷이 안되는게 치명적이다. 내일 계획 점검도 제대로 안된다. 지도도 확보 못했으니...

주변에 다방 찾아 다닌다. 희안하다. 다방이 없다. 갓 공사하는 현장과 큰건물(개스공사네)과 불빛만 요란하다.

들어와 갖고 온 와인을 딴다 마신다 동시에 마눌님은 컴으로 숙제하면서.. 나는 폰으로 일정 정리를 한다.

두번이나 친게 날라갔다 한다.. 내껀 그대로다. 폰의 위력 대단하다. 달면서 맛있는 비싼와인 그리고 멸치. , 밤 안주로 밤을 보낸다.

내일은 7시에 컵쌀국수 먹고 8시에 나가 제주도의 2/3바퀴를 돈다. 갈 길이 엄청 멀다. 내일은 제주 김영 구좌 월정으로 해서 성산으로 간다.

* 폰으로 지역을 간단 보고 재설정을 하다보니 만뱅듸나 나홀로나무는 실제로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런데도 기본 게획 다 채우고 더 봤으니 첫날 대만족이다.


새별오름 나홀로 타는 나무 : 한림읍 금악리산 30-8

- (4.5k/ 7)만벵듸 공동장지 ?) 한림읍 갯거리오름길 112 한림읍 금악리 2754

-(1.3/3)명월대 팽나무군락 :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2223

-(8.2 13)명월성지 한림읍 명월리 2237 -(2k)명월초등: 한림읍 명월로 48 한림읍 명월리 1734

(32k 50)진아영할머니집터 제주시 한림읍 월령122

월령선인장군락지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359-4

(15.1/23) 한경면두모연대(강흥식책기념비) 한경면 두모리 2605

판포포구, 해오름전망대 한경면 판포리 2946-1 판포145 -

독개물항뚝베기 한림읍 한림로 478 한림읍 옹포리 593-1

- 옹포리 명월포전적지 한림읍 옹포리 578-14 (앞뒤로 독개물항해물둑배기,한림칼국수보말매생이 )

- (숙소가는 길에) 한림지서 터에는 현재 한림파출소 한림읍 한림로 651 한림읍 한림리 1367-2 

- 한림칼국수보말매생이 제주시 한림읍 한림해안로 139 070-8900-3339

- 고고애월게스트하우스  064-900-1088 010-3428-0073 -(: 봉화대 애월환해장성



제주 한림에 서린 4.3 아픔 만벵듸 가는길’(누구 글인지 체크 못했음)


제주시 한림읍 곳곳에 서려 있는 4.3 흔적들을 찾아가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됐다. 한림여성농업인센터(센터장 강영주)는 지난 27제주4.3기행 내 고향 한림 만벵디 가는길이라는 주제로 한림읍 곳곳에 흩어진 4.3유적들을 찾아 한림지역 4.3역사를 공부했다.

여느 제주지역과 마찬가지로 한림읍 또한 수 많은 4.3희생자가 발생했다. 한림어업창고(예비검속 수용소), 한림지서터, 서청주둔지(

한림여관), 한림초등학교(한림초등학교), 신겡이서들(집단희생터), 만벵듸 묘역 등 많은 곳에 학살 흔적이 남아있다.

한림 어업창고는 한국전쟁 발발직후 소위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한림지역 주민들을 구금했던 장소다. 제주4.3연구소 등에 따르면 이 상황을 기억한 임문숙 씨는 어업창고에서 50~60명의 사람들이 짧게는 하루에서부터 길게는 두 달 동안 갇혀 지냈어요. 남녀 구분도 없었어요. 식사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가져다준 걸 먹거나, 보리쌀만 가져다주었을 경우에는 직접 지어먹었죠. 수감 기간 취조를 받거나 고문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면회는 공식적으로 허가되지 않았죠. 입구에 경찰이 지키고 있어서 창고문을 통해 먼발치로 가족들의 얼굴만 확인할 뿐이었어요. 그러나 일부 유족들은 면회를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하루는 식사를 빨리 하라고 해요. 빨리 식사를 마치라고. 경비 서던 순경이. 그래서식사하는 도중인데 경찰관이 와요. 이제 우리는 다 죽었구나 생각하고 있었죠.호명을 하고 나자 이름 불린 사람은 다 나오라고 해요. 운이 좋았는지다른 몇 사람과 함께 살아남았어요라고 증언했다.


한림지서 또한 4.3의 역사가 남아 있다. 한림지서는 제2구서 경찰서 관할지역으로 일제 때부터 이어져 온 지서였다. 한림지서 터에는 현재 한림파출소가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는 2016421일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와 제주4.3경찰유족회가 세운 한림지서 추모.표지석이 있다.

서청주둔지인 한림여관터는 한림초등학교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4843일 서북청년(서청)회원 약 10여명은 한림초등학교 옆에 있던 한림여관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청은 약 100여평 되는 여관을 숙소 겸 사무실로 사용했다. 인근 한림초등학교는 해방 후 한림면 건준과 인민위원회 결성식을 열었던 곳으로 194731일에는 6000여명이 28주년 3.1절 기념식을 열었다.

194810월 이후 한림리는 토벌대의 한림지역 근거지가 됐다. 만벵듸 예비검속 희생자 묘역은 금악리에 위치한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서부지역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1950년 음력 77일 모슬포 섯알오름 탄약고터에서 집단 학살됐다. 당시 희생자는 63명으로 알려졌다 한림지역 희생자 시신 수습은 1956330일 이뤄졌다. 만벵듸 공동장지는 유족 가운데 한 명이 무상으로 내놓았고 이 곳에 46위가 안장돼 있다. 이후 유족들은 메도, 술도, 벌초도 같이 하자‘77 만벵디유족회를 결성했다